달과 6펜스
예술 충동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지독한 이기심과 광기 어린 천재성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서머싯 몸의 대표작이자 세계대전 이후 인간 문명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에게 영혼의 해방구가 된 소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 괴짜의 기행을 그린다. 40대 중산층 증권맨이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버리고 무작정 파리로 넘어가 예술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파리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준 스트로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하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 존재했다면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될, 도덕적으로 완전히 파탄 난 인간이다.
천재성이 파탄 난 도덕성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가?
그의 예술적 천재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야생의 자연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다. 비록 소설 속 그의 마지막 유작은 불태워져 남지 않았으나, 묘사된 바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걸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천재성이 그의 파탄 난 인성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실에서도 이런 인물들은 종종 등장한다. 피카소의 문란한 사생활이나 스티브 잡스의 악명 높은 괴팍함처럼, 역사 속 수많은 천재들이 인간성 면에서는 심각한 결함을 보였다. 그들이 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더라도, 천재적인 성취와 인간적인 밑바닥은 철저히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성은 희소하고 도덕적 결함은 만연하기에, 대중은 기꺼이 전자에 더 주목하곤 한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좇는 것은 진정 원하는 삶일까?
그렇다고 스트릭랜드의 내면을 오직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스스로에게만큼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과 내면의 욕구에 솔직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이러한 주인공을 보며 독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수많은 현대인은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회가 정해놓은 '괜찮은 삶'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새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사회가 정의한 성공적인 삶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적응이 과연 무조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달(이상)과 6펜스(속세), 그 중간의 아득한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무리
소설은 현실의 6펜스를 버리고 달을 택한 예술혼에 더 무게를 싣는 듯하지만, 당장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한쪽에만 매몰되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적 책임과 가족을 팽개친 채 이상만 좇는 것은 타인을 향한 무책임한 폭력이며, 반대로 먹고사는 현실에만 함몰되는 것은 개인의 삶을 지독히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스트릭랜드 같은 극단적인 괴짜의 삶을 흉내 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지금 진짜 원해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한 번쯤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